유니야의 조선시대 '사내기생'

조선 시대 ‘사내기생’

  • 2025. 6. 23.

    by. 유니야15

    목차

      ― 존재했지만 말할 수 없었던 자들에 대한 두 번째 시선

      “그들은 조선의 무대 위에 있었지만, 역사의 페이지에는 없었다.”

      조선의 사내기생은 단순히 잊힌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사회가 필요로 했지만, 동시에 불편해했던 존재였다.
      예술과 감정, 젠더 역할과 문화적 상징성 사이에서
      그들은 늘 중간자적인 위치, 즉 말하자면 안 되는 존재, 그러나 무시할 수도 없는 존재로 자리했다.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은 단지 이름이 지워졌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가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 언어로 호명하지 않았고,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들을 인정하는 순간, 조선이 지켜온 성별 이분법, 유교적 도덕 체계, 남성 중심의 위계가 균열을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기생은 정체성이 불분명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분명 남성이었고, 여성 기생의 역할을 수행하며, 정해진 사회적 기능을 충실히 감당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성별의 경계, 사회적 규범, 도덕적 상징성의 모호한 지점에 있었기에
      그 자체로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었다.

      결국, 조선은 그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었던 사회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기록된 자들만이 역사’라고 믿었던 시대를 지나왔다.
      이제는 기록의 공백이야말로 가장 깊은 질문을 던지는 영역임을 안다.

      • 왜 이들은 이름이 없었는가?
      • 왜 그들의 활동은 ‘기록’이 아니라 ‘암시’로만 남았는가?
      • 왜 풍속화는 그들을 그리되, 설명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지 과거를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오늘 우리가 여전히 말하지 못하고 있는 존재들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불편한 존재를 기록하지 않는다.
      여전히 경계에 선 사람들을 중심의 언어로 호명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내기생을 향한 ‘두 번째 시선’은 단순한 역사 복원이 아니라 지금을 사는 우리 사회를 되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제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물어야 한다.
      왜 그들은 사라졌는가, 아니라
      왜 우리는 그들을 말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두 번째 시선’은, 존재를 다시 초대하는 용기다.

      1. 사내기생, 왜 역사 속에서 지워졌는가?

      ― 조선은 그들을 필요로 했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사내기생은 조선 사회가 만든 필요한 예외였다.
      그들은 분명히 존재했고, 실제로 기능했으며, 일정한 문화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거의 알지 못한다.
      공식 문서에도, 연대기에도, 인물 기록에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 이유는 단순히 "기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조선이 지워야 했던 존재,
      말할 수 없었기에 말하지 않았던 존재,
      기능은 수용했지만, 정체성은 부정했던 존재
      바로 그것이 사내기생이었다.

      ① 유교적 질서 속 ‘불편한 존재’

      조선은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유교 사회였다.
      성별 질서는 철저했고, 남녀의 역할은 분명히 구획되었다.
      남성은 바깥일, 여성은 집안일.
      남성은 권력과 학문, 여성은 순종과 침묵.

      그런 사회 속에서, 사내기생은 이분법을 뒤흔드는 존재였다.

      • 남성이지만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고,
      • 여성 기생의 복식과 몸짓을 흉내 내며,
      • 감정적 위로와 정서적 공감이라는 여성화된 역할을 맡아야 했던 남성

      이것은 조선의 도덕 질서로 보면 **정체성의 ‘위반’**이었다.
      사내기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유교 질서를 근본부터 흔드는 결과를 낳았기에,
      조선 사회는 그들을 철저히 ‘익명화’하거나 ‘기능화’할 수밖에 없었다.

      사내기생은 허용되었지만,
      인정되면 안 되는 존재였다.

      ② 성적 긴장, 그러나 말해선 안 될 감정

      기생은 단순히 예능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감정과 정서, 때로는 권력자의 욕망을 예술로 매만지는 존재였다.

      여성 기생은 그런 역할을 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성이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경우,
      거기에는 언제나 성적 긴장과 모호한 감정 코드가 뒤따랐다.

      사내기생이 단순히 춤과 노래를 했던 것이 아니라,

      • 아름다움을 연기하고
      • 감정을 유도하며
      • 심지어는 ‘남색(男色)’ 문화와도 연결될 수 있는 요소를 가졌다는 사실은

      조선 사회로 하여금 그들의 존재를 더욱 말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 “욕망을 유발할 수 있는 남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조선의 도덕담론에서는 금기였기 때문이다.
      → 그 결과, 사내기생은 ‘기록될 수 없는 존재’, ‘설명되지 않은 퍼포먼스’로만 남았다.

      ③ 제도화되지 못한 존재는 기록되지 않는다

      기록이란 무엇인가?
      조선의 공식 역사 기록은 철저히 제도화된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사료 중심이다.

      • 양반의 이름은 족보에 남고
      • 여성은 출생과 혼인을 중심으로 기록되며
      • 공적 기능을 수행한 자만이 사관(史官)의 붓을 통해 역사에 남는다.

      그러나 사내기생은?

      • 신분은 중인 이하 혹은 백정 계급
      • 기능은 있었지만 ‘직책’은 없었고
      • 임금 앞에서 공연을 해도, 연희 도중의 기능 담당자일 뿐, 주체는 아니었다.

      즉, 사내기생은 기록 체계 안에서 이름 없는 기능자였을 뿐이다.
      기능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고,
      역사가 대상화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었다.

      ④ 사회는 그들을 익명으로 유지하고 싶었다

      조선은 다양한 이유로 사내기생의 존재를 '침묵 속에 기능하게 하길 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필요했지만, 동시에 말해지면 불편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 풍류 자리에서 여성 기생이 부족할 경우, 그들을 대체하는 인력
      •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감정적 위로와 정서를 전달해야 할 때 등장하는 ‘안전한 대체자’
      • 예술과 성 역할의 경계에서 조선의 감정 문화를 유지시킨 암묵적 장치

      이러한 역할은 ‘기능’으로는 필요했지만
      정체성으로는 사회가 받아들이기를 꺼린 형태였다.

      → 그러므로 그들은 익명이어야 했고,
      → 말할 수 없고,
      → 기억되지 않아야 했다.

      결국, 익명은 의도된 선택이었다.
      존재의 침묵은 역사적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체제 유지 전략이었다.

      ⑤ 우리는 왜 지금에서야 그들을 말하게 되었는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사내기생이라는 존재를 말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단지 과거를 궁금해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늘날 사회가

      • 성별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었고
      • 감정 표현의 방식이 확장되었으며
      • 예술을 통해 사회 구조를 되묻는 문화적 감수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내기생은 조선이라는 질서에서 말해지지 않도록 설계된 존재였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 침묵 속 존재들을 다시 이름 없는 퍼포머로,
      젠더 수행자로,
      사회적 경계인의 실존으로
      호명할 수 있는 시대에 와 있다.

      결국, 사내기생이 지워졌던 것은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체제가 그들을 말할 수 없을 만큼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사내기생이 지워진 5가지 이유

      이유                                                              설명

       

      유교 도덕 질서의 위반 남성이 여성 역할을 수행했다는 정체성 불일치
      성적 긴장과 사회적 불편 남색 문화와 연결되는 가능성 때문에 침묵
      비제도적 존재 제도 밖 기능자로, 기록 대상이 아니었음
      익명성 유지의 전략 사회적 불안과 도덕적 회피의 결과
      체제 불안의 반영 체제가 젠더 경계의 유동성을 감당하지 못함

      2. 풍속화와 복식 속에 남은 흔적들

      ― 사라졌지만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던 실체의 시각적 증명

      조선의 사내기생은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공식 사료에도, 연대기적 문헌에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문화유산 속에,
      그들은 ‘말 없이’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흔적은 두 가지다.

      • 첫째, 풍속화 — 당시 사람들의 일상과 정서를 그림으로 남긴 시각 기록
      • 둘째, 복식 — 성별과 계층, 역할이 반영된 옷과 장신구, 치장 방식

      이 두 분야는 공식 기록과 달리 ‘기억에서 지우지 못한 것들’을 은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 공간이다.
      우리는 이제 이 시각 자료들을 통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존재를 해석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① 풍속화, 말하지 않아도 그려진 존재

      조선 후기의 풍속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시각적으로 기록한 문화적 코드였다.
      김홍도, 신윤복, 장승업 같은 대표 화가들은
      당대의 사회, 인간, 감정, 성, 예술을
      정면으로 그려냈고, 때로는 풍자하고 은유하며 ‘침묵한 영역’을 그림으로 말하기도 했다.

      풍속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다음과 같은 존재들이 종종 등장한다:

      • 여성과 같은 옷을 입은 남성
      • 여성과 나란히 춤을 추는 중성적 무희
      • 얼굴은 남성, 몸짓은 여성인 듯한 인물
      • 남성 관객을 향해 연기하는 수줍은 무희

      이들은 모두 **‘설명되지 않은 인물’**로 남아 있다.
      화가는 그들을 그렸지만, 말하지 않았다.
      이는 곧, 그들이 **‘말할 수 없었던 존재였지만 실제로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 사내기생은 바로 이러한 풍속화 속 ‘익명의 무희’로 수없이 그려졌으나,
      → 그 정체성은 끝내 명명되지 않았다.

      ② 복식의 경계 ― 여성의 장신구를 두른 남성

      복식은 단순한 의복을 넘어서 정체성과 역할을 규정짓는 사회적 기호다.
      조선시대에는 성별, 계급, 나이, 직업에 따라 착용 가능한 옷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만큼 복식은 신분 질서를 나타내는 시각적 언어였다.

      하지만 사내기생의 복식은 이 언어 질서에 혼란을 일으킨다.

      • 여성 기생의 치마 구조를 빌려온 도포
      • 남성용 흰색 한삼 위에 여성 장신구를 덧댄 의상
      • 귀고리, 노리개, 꽃장식 등 여성 기생의 복장을 암시하는 소품들
      • 색감, 문양, 소매 형태 등에서 남성과 여성의 요소가 혼합된 ‘중성적 복장’

      이러한 복식은 그저 ‘유행’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조선 사회가 여성의 감수성과 미적 표현을 남성의 몸에 입히고자 했던 욕망의 시각적 표출이었다.

      → 즉, 복식 속에서 우리는
      남성으로 분류되었지만, 여성적 역할을 연기해야 했던 존재를 본다.
      그들이 바로 사내기생이었다.

      ③ 악기의 배치와 움직임에서도 감지되는 존재감

      풍속화 속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무대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인물들을 보면
      간혹 다음과 같은 특징이 눈에 띈다.

      • 일반 악공과 다르게 머리 장식이 화려하거나 분장이 진한 인물
      • 악기를 연주하면서도 시선을 관객이 아닌 무희에게 두는 소년
      • 여성 기생 옆에서 같은 동작을 모방하거나 동시에 무대를 채우는 중성적 존재

      이는 모두 기록에는 남지 않았지만, 공연의 일부였던 사내기생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암시하는 장면들이다.

      그들은 단순한 조연이나 배경이 아니라,
      정서적 흐름을 만드는 무대 위의 필수적 퍼포머였다.

      ④ 분장과 소품, 그리고 신체의 재구성

      조선 후기 사대부가 남긴 문집이나 그림 속에서도
      사내기생의 존재는 ‘여장한 소년’, ‘미소년 악공’, ‘무동’ 등의 형태로 언급되거나 그려진다.

      이들이 사용하는 분장 도구나 착용한 치장품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요구한 감정과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남성 신체를 재구성하는 장치였다.

      예를 들어:

      • 여성 기생에게나 허용된 연지곤지
      • 눈매를 길게 뻗어 그리는 먹 분장
      • 은장도, 옥 노리개 등의 장식
      • 머리에 꽃을 꽂거나 장신구를 붙이는 행위

      → 이는 단순한 외모 꾸미기가 아닌, 사회적 젠더 역할에 맞춰 신체를 구성하는 퍼포먼스였다.
      → 이러한 모든 시각적 장치들은 그들이 ‘남성’이면서도 여성의 정서를 연기하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⑤ “말해지지 않음”의 시각적 복원

      풍속화와 복식은 말이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말 없는 이미지’야말로,
      기록되지 않은 존재를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한 창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묻는다:

      • 왜 이 그림 속 인물은 설명이 없을까?
      • 왜 이 의복에는 혼성적 요소가 섞여 있을까?
      • 왜 이 장면 속 감정은 여성만으로 연출되지 않았을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
      그림 속 침묵은 무너지고,
      그곳에 말할 수 없었던 사내기생의 존재가 조용히 떠오른다.

      3. 젠더 역할 수행자이자 정서의 연출자

      ― ‘남자’이지만 ‘여성성’을 수행했던 이중적 존재

      조선 사회에서 사내기생은 생물학적 성별로는 ‘남성’이었지만,
      사회가 요구한 역할은 철저히 ‘여성’의 것이었다.
      이 모순된 정체성은 단순히 시각적 혼란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감정의 흐름을 조율하고 유지하는 정서의 연출자로서 기능하는 구조적 역할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단지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과 젠더가 교차하는 무대에서 ‘사회적 분위기’를 설계하는 문화적 연기자(Gender Performer)**였다.

      ① 조선의 감정 구조와 기생의 역할

      조선은 감정 억제를 미덕으로 삼은 사회였다.
      남성은 울지 않아야 했고, 기쁨도 절제했으며, 사랑조차 시조로 감추어 표현했다.
      그런 억제의 문화 속에서 감정을 해소하거나 표현하는 기능을 대신 떠맡은 존재가 바로 기생이었다.

      • 그녀들은 술자리에서 시조를 읊고,
      • 손짓과 눈짓으로 분위기를 조율하며,
      • 사대부의 감정을 대리로 표현해주는 ‘정서의 거울’이었다.

      그런데 여성 기생이 부재하거나, 여성을 직접 활용하기 어려운 특정 공간(궁중, 서원 등)에서는
      사내기생이 그 역할을 대체하거나 보완했다.
      그들은 남성이면서도 여성의 감정 구조와 정서를 ‘연기’함으로써,
      조선의 감정 억제 문화를 가능하게 만든 ‘간접적 정서 표현 도구’였던 것이다.

      ② 젠더 수행(Gender Performance)의 조선적 사례

      현대 젠더 이론에서 ‘젠더 수행’(Gender Performance)은
      정체성(identity)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반복적 행위와 사회적 연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즉, 남성다움/여성다움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기대하는 방식대로 살아내는 것’**이다.

      사내기생은 이러한 이론의 전형적 사례다.
      그들은 태생적 남성이지만,

      • 여성 기생처럼 말하고,
      • 여성처럼 춤추며,
      • 여성적인 감정을 연기했다.

      → 이 모든 행동은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사회가 요구한 젠더 역할을 ‘퍼포먼스’로 구현한 것이었다.

      조선은 이 수행을 통해,
      감정 표현과 성 역할 사이의 균형을 ‘연기로서 유지’했다.

      ③ 감정 연출자로서의 무대 위 존재

      사내기생이 등장했던 대표적 공간은 **연회(宴會)**였다.
      궁중 연회, 사대부의 송별 자리, 과거 급제자의 축하 연, 시문 모임 등에서
      이들은 단순히 공연자가 아닌 분위기 설계자였다.

      이들이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 남성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사랑’, ‘그리움’, ‘이별’의 정서를 대신 노래
      • 문인들의 시심을 자극하기 위한 감정적 분위기 연출
      • 형식적으로는 남성의 무대, 그러나 실제로는 여성적 정서가 흐르는 공간 창출
      • 왕이나 양반 앞에서 ‘말 대신 몸짓’으로 반응 유도

      → 이 모든 것이 사내기생이라는 젠더 경계자에 의해 매끄럽게 이뤄졌다.
      → 그들은 ‘감정의 대행자’였고, ‘사회의 심리적 스위치’였다.

      ④ 사내기생은 왜 ‘여성성’을 요구받았는가?

      조선 사회는 여성적 감성을 중요시하면서도,
      여성을 공적인 무대에 세우는 것을 금기시했다.
      이런 이중 구조는 여성의 감정 표현 능력은 필요하지만, 여성 자체는 불편하다는 역설을 낳았다.

      그 공백을 메운 존재가 바로 사내기생이다.
      그들은 남성이기 때문에 허용되었고,
      여성성을 수행했기 때문에 기능했다.

      • 권력자의 감정을 터뜨리게 만들 수 있는 존재
      • 공적 공간에서 허용 가능한 ‘여성적 감성’의 구현자
      • 성적 대상이 되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움’을 연기할 수 있는 인물

      이는 조선이 여성 없이 여성성을 활용하는 방식이었으며,
      젠더 역할을 성별로부터 분리하여 수행시킨 가장 극단적 구조였다.

      ⑤ 존재하지만 주체는 되지 못한 정서의 통로

      사내기생은 역할을 수행했지만, 이름은 남기지 못했다.
      공적 기능은 있었지만,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은 **사회가 억제한 감정과 갈망을 위임했던 ‘감정의 매개체’**였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없었다면 조선의 많은 연회, 예술 공간, 정치적 상징은 불완전했을 것이다.

      • 문인이 시를 짓고 감정을 흐르게 하기 위해
      • 권력자가 감정적으로 소통하는 척하는 무대 연출을 위해
      • 남성 중심 사회가 ‘감성적 순간’을 누리기 위해

      그들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들을 말한다는 것은
      그들이 단지 배경이 아니었고,
      정서적 연출자이자 사회적 기능자였음을 복권시키는 작업
      이다.

      오늘날 다시 보는 조선의 사내기생, 기록과 해석

      4. 왜 지금, 우리는 그들을 다시 말해야 하는가?

      ― 사라진 존재를 다시 부르는 일은 단지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자, 중심의 언어로 쓰였다.
      그러나 모든 중심에는 주변이 있고,
      모든 기록 뒤에는 의도적으로 말해지지 않은 침묵의 존재들이 있다.

      사내기생은 그 침묵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존재했지만, 이름이 없었고,
      예술의 중심에 있었지만, 정체성은 허용되지 않았으며,
      기능을 수행했지만, 주체로 남을 수 없었다.

      그런 이들을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말하는 일은
      단지 잊힌 역사에 대한 애도이거나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행위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자 선언이다.

      ① 기록에서 소외된 존재를 말하는 것은 ‘역사 정의’의 시작이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의 말이 남고, 누구의 말이 사라지는지를 결정하는 권력 행위이기도 하다.

      사내기생은 분명 존재했고, 기능했고, 역할을 했지만,
      그들은 사료의 주어가 되지 못했다.

      • 궁중 연회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이름이 없고
      • 시조의 감정을 살려줬지만, 문장 속 주체가 아니며
      • 문화의 일부였지만, 제도의 일부는 아니었다

      이러한 존재를 말하는 일은,
      기록의 공백을 복원하고, 역사라는 구조 자체를 더 넓게 호흡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 “그들도 있었다”고 말하는 순간,
      → 역사란 ‘선택된 진실’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기억까지 포함한 인간의 총체’**로 확장된다.

      ② 사내기생은 ‘성별 이분법’의 균열 지점을 드러낸다

      오늘날 우리는 성 정체성과 젠더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경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도 성별의 유동성이 존재했을까?

      사내기생은 이에 대한 선명한 사례이자, 조선 사회가 갖고 있었던 젠더 유연성의 흔적이다.

      •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 역할은 여성 기생의 정서를 수행했고
      • 복식과 언어, 감정의 코드까지 여성화된 방식으로 살아갔다

      이들은 트랜스젠더도 아니고, 단순한 여장남자도 아니며,
      사회가 요구한 ‘젠더 역할’을 스스로 연기했던 **젠더 퍼포머(Gender Performer)**였다.

      → 이들을 말하는 것은,
      → 과거에도 성별은 유동적일 수 있었고,
      → 그 유동성이 필요에 따라 사회 안에 편입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를 발굴하는 일이다.

      ③ 예술사의 빈자리를 채우는 퍼포먼스의 주체

      우리는 조선을 예술의 시대라고 말한다.
      시조, 가야금, 판소리, 풍류, 한시와 무용이 공존하던 문화의 고봉기.
      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남성 창작자’ 혹은 ‘여성 기생’만이 등장한다.

      그럼 그 사이에서 예술을 구현한 **‘중성적 수행자’, ‘감정의 연출자’, ‘성 역할을 넘나든 무대인’**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사내기생이 그 공백을 채운다.

      그들은

      • 감정을 연기하고
      • 춤으로 서정을 표현하며
      • 연회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데 있어
      •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사회적 감정의 무대 장치로서 기능했다

      → 하지만 예술사에서는 잊혔다.
      →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이들을 다시 말하는 일은
      예술사의 주체를 확장하는 일이며, 문화적 감수성의 복권이다.

      ④ ‘경계인’을 말하는 사회는 더 넓어진다

      사내기생은 경계에 있었다.
      남성/여성, 주체/객체, 기록/침묵, 중심/주변이라는 모든 구조에서 ‘사이’의 공간에 놓인 자들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수많은 경계인들이 존재한다.

      • 다문화 가정의 아이
      • 이주노동자
      • 논바이너리 성 정체성을 가진 청년
      • 제도 밖에서 살아가는 창작자, 감정노동자, 비정규직

      이들을 이해하는 감수성은,
      역사 속 경계인들을 조명하고 해석하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 우리가 사내기생을 말하는 이유는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우리 자신을 위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⑤ 교육과 문화에서 ‘다양성’의 뿌리를 다시 세우기 위해

      사내기생은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름은 시험에 나오지 않으며, 박물관에서도 부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교육은 시험을 넘어서야 하고,
      문화는 중심에서 주변으로 시선을 확장해야 한다.

      이들을 다시 말하는 일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만들 수 있다:

      • 왜 우리는 특정 정체성만 ‘역사화’하는가?
      • 왜 젠더 역할을 수행한 인물은 예외로 취급되는가?
      • 어떤 존재가 문화에 기여했지만, 말해지지 않았는가?

      → 이 질문은 교육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 문화적 다양성을 과거로부터 정당화할 수 있는 뿌리를 제공한다.

      5. 조선이라는 시대의 ‘경계’에서 태어난 존재

      ― 체제의 틈, 질서의 모순 속에서 피어난 이름 없는 무대인

      조선은 매우 명확한 사회였다.
      신분은 태어날 때 정해졌고, 성별에 따라 인생의 궤적이 갈렸으며,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권력과 감정, 도덕과 욕망은
      뚜렷한 경계를 그으며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조선이라는 체제 안에서
      모든 질서가 완전히 작동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틈과 균열 속에서
      사회가 감추고자 했던 감정,
      제도가 처리하지 못한 욕망,
      도덕이 감당할 수 없었던 유연성들이
      조용히 새어나왔고,
      바로 그곳에서 ‘사내기생’이라는 존재가 태어났다.

      ① 조선이라는 거대한 틀과 경계들

      조선은 유교적 도덕과 명분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구분하고 통제하려 했다.
      그들의 경계 구분은 삶 전체에 스며 있었다:

      • 남성과 여성
      • 사대부와 중인
      • 공사(公私)의 영역
      • 감정과 이성
      • 공식과 비공식
      • 권력자와 피지배자

      이런 경계가 유지되어야
      체제가 ‘정당하고 안정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계는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경계 바깥을 필연적으로 만들어낸다.

      → 바로 그 바깥, 혹은 경계선 위에서 탄생한 존재가 사내기생이다.

      ② ‘남성’과 ‘여성’ 사이: 젠더 경계의 현현

      사내기생은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성 기생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은 옷을 통해, 말투를 통해, 감정 표현을 통해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적 기능’을 연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완전히 여성이 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남성의 신분으로 궁중에 출입했고,
      남성과 술을 나누었고, 남성들만 있는 공간에서 활동했다.

      →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 양쪽의 경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던 이중적 존재

      그들의 정체성은 ‘사이’에 있었고,
      그 사이란 곧 조선 사회가 억누르고자 했던 유동성과 불확실성의 상징이었다.

      ③ 감정과 도덕의 경계: 허용과 금기의 회색지대

      조선 사회는 감정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여겼다.
      하지만 감정은 억눌린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과 기쁨, 그리움과 분노, 욕망과 애정을
      누군가는 표현해줘야 했고,
      누군가는 그 정서를 형식화된 방식으로 대신 연기해야 했다.

      사내기생은 이때 등장했다.

      • 그들은 술잔을 따르며 권력자의 정서를 유도했고
      • 시조나 춤을 통해 감정을 정제된 형태로 풀어냈으며
      • 공적인 자리에서 은밀한 감정을 감정 아닌 듯 연기했다

      → 다시 말해,
      → 그들은 ‘표현이 허용되지 않는 감정’을 사회적으로 허용 가능하게 만든 존재였다.
      → 감정과 도덕, 허용과 금기 사이에 선 존재.

      ④ 제도와 실천의 틈: 기록되지 않는 실재

      조선은 제도를 중시하는 나라였고,
      제도 속에 이름이 있어야 비로소 ‘존재하는 사람’으로 인정되었다.

      하지만 사내기생은 제도에 이름이 없었다.
      기록된 관직도, 신분 호칭도 없었으며,
      ‘기생’이라는 이름조차 여성에게만 붙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실제로 활동했고, 연회에 참여했고, 예술의 무대를 채웠다.
      그러나 기록은 그들을 ‘기능’으로만 남겼고,
      이름은 삭제되었다.

      → 제도가 포섭하지 못한 실재
      제도와 실천의 간극에서 태어난 존재

      이런 존재는 항상 ‘경계’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중심도 아니고, 완전한 바깥도 아닌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이들.

      ⑤ 조선이라는 사회의 모순이 낳은 존재

      사내기생은 조선이라는 사회가 만들고자 했던 이상과
      그 사회가 현실적으로 맞닥뜨린 감정·욕망·예술·권력의 모순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태어난 존재’였다.

      • 여성 기생이 허용되지 않는 공간에서 감정적 기능이 필요했을 때
      • 예술적 감수성과 여성적 분위기가 필요하지만 여성을 부를 수 없을 때
      • 남성만 존재해야 하는 장소에서 여성성이 요구될 때

      → 사회는 그 문제를 사내기생이라는 경계적 존재로 해결했다.
      → 말하자면, **사내기생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비공식 해법’**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존재해야 했지만, 공적으로 말할 수 없었고
      기능을 했지만, 주체로 남을 수 없었다.

      → 사내기생은 곧, 조선 사회의 모순이 형상화된 결과물이자
      경계를 통해 유지된 사회의 역설적 산물이었다.

      오늘, 사내기생을 다시 보는 다섯 가지 이유

      이유                                                                                 설명

       

      1. 침묵당한 존재의 복권 기록에서 지워졌던 존재에 말할 기회를 주기 위해
      2. 젠더 수행의 역사적 사례 오늘날 성 다양성 논의를 위한 기초적 문화 자료
      3. 감정 문화사의 복원 억제된 사회 감정의 예술적 표현자
      4. 예술사의 누락된 주체 조선 퍼포먼스 문화의 숨겨진 주인공
      5. 경계인을 이해하는 사회를 위한 렌즈 현대 사회의 포용성을 위한 역사적 시선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