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야의 조선시대 '사내기생'

조선 시대 ‘사내기생’

  • 2025. 6. 26.

    by. 유니야15

    목차

      ― 전통의 경계에서 피어난 젠더 다양성의 흔적

      1. ‘남자 기생’이 있었다고요?

      ― 조선의 기록 너머, 존재했으나 말해지지 않았던 이들

      “기생은 모두 여자 아니었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당연한 생각입니다.
      조선시대 ‘기생’이라는 단어는 여성 예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익숙하죠.
      화려한 한복, 절제된 춤사위, 그리고 한시와 노래를 아우른 풍류의 상징.
      하지만 여기에 질문 하나를 던져봅니다.

      “만약 기생이 여성이 아니라, 남자였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남자가 여성의 복장을 하고, 여성의 말투와 몸짓으로 연회에 나섰다면요?”

      놀랍게도, 조선에는 이런 존재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들을 우리는 오늘 **‘사내기생’**이라고 부릅니다.

      1-1. ‘사내기생’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선 명확히 해야 할 점은, 조선시대 사람들은
      ‘사내기생’이라는 말을 직접 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기록 속에서는 “무동(舞童)”이나 “남색(男色)의 풍류자”,
      혹은 지역에 따라 단순히 “어릿광대” 혹은 “젊은 사내 예인” 등
      다양한 표현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이 모두 사내기생이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여성 기생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 남성 예인 집단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복수의 문헌, 풍속화, 설화, 그리고 궁중 연회 기록을 통해 드러납니다.

      1-2. 그들은 어디에서 등장했을까?

      사내기생의 활동은 주로 다음과 같은 장소와 맥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 궁중 연회나 사신 접대 행사
        외국 사신 앞에서 여성 기생을 등장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에서,
        청소년기 또는 젊은 남성 예인들이 대신 등장해 춤과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명나라, 청나라 사신이 방문하는 자리에서 사내 무용수의 기록이 보입니다.
      2. 병영과 지방 관아의 연희
        여성의 출입이 제한된 공간에서 남성이 기생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거나 장기 주둔지에서의 연회를 위해
        남성 중 재능 있는 이들이 ‘여성적 풍류’를 수행한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3. 양반가의 사설 연희
        일부 양반층은 특별한 취향과 권위 과시의 일환으로
        ‘기예를 익힌 소년’을 길러 연회에 참여시키는 풍습을 유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여성처럼 꾸미고, 화장을 하고, 심지어 여성복을 착용하기도 했습니다.

      1-3. 조선 사람들은 사내기생을 어떻게 보았을까?

      사내기생에 대한 인식은 시대와 계층에 따라 달랐습니다.

      • 일부 문헌에서는 풍류와 예술적 재능을 지닌 특별한 존재로 묘사되며,
        왕이나 고위 관료가 그들의 춤과 노래에 감탄했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 그러나 동시에 성적 경계의 흐림에 대한 불편함, 혹은 도덕적 비판도 존재했습니다.
        유교적 윤리를 중시했던 조선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처럼 행동하고 복장하는 것은 때때로 **‘기이함’ 혹은 ‘부정함’**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중적 태도 속에서도 중요한 사실은,
      사내기생이라는 존재 자체가 ‘문제적인 존재’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활용되고 수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조선은 겉으로는 엄격한 성별 이분법을 고수했지만,
      문화와 예술의 맥락에서는 놀랄 만큼 유연한 젠더 표현을 허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4. 왜 우리는 ‘남자 기생’의 존재를 몰랐을까?

      오늘날까지 사내기생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기록의 부족뿐만 아니라 기억의 전략적 삭제에 있습니다.

      • 조선 후기와 근대화 시기, 유교적 도덕성이 강화되고
        남성 중심의 근대국가 질서가 형성되면서,
        ‘여성적인 남성’, ‘유연한 젠더 표현’은 비정상적 이미지로 밀려났습니다.
      • 그 결과, 사내기생과 관련된 구술 전승은
        ‘민간 신화’, ‘풍속화의 유희’로 치부되거나
        단순한 ‘변태적 특이 사례’로 왜곡되었습니다.
      • 역사 교과서나 대중문화에서도 이들은 말해지지 않는 존재,
        혹은 ‘있었을지도 모를 사람들’로 잊혀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젠더 다양성과 성소수자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이제 우리는 사내기생이라는 존재를
      **‘비정상’이 아니라 ‘비가시화된 문화의 주체’**로 새롭게 읽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5. 남자 기생은 예외가 아니라 가능성이었다

      사내기생은 결코 단순한 변칙이 아닙니다.
      그들은 조선이라는 전통사회가
      문화적 맥락 속에서 성 역할의 경계를 어떻게 유연하게 넘나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들이 비록 족보에도, 정사에도 이름을 남기지 못했지만,
      그들의 춤과 노래, 연회와 표정은 분명 조선 문화의 일부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남자 기생’이라는 단어에 놀라게 되는 이유는,
      그들의 존재가 새로워서가 아니라,
      역사가 그들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말할 차례입니다.
      역사에서 누락된 이들의 존재를 다시 호명하고,
      그들이 남긴 문화적 흔적을 통해
      조선이라는 시대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다시 조명할 때입니다.

      2. 사내기생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 성별 이분법의 틈, 예술과 권력의 경계에서 태어난 존재

      사내기생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조선이라는 시대가 품고 있던 모순과 경계,
      그리고 공식 질서와 문화 실천 사이의 간극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존재였습니다.
      그들의 등장은 단지 ‘희귀한 현상’이 아니라,
      조선이 지닌 사회적 긴장과 예술적 필요의 교차점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결과였습니다.

      2-1. 유교적 금욕성과 현실의 모순

      조선은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한 사회였습니다.
      특히 성 윤리와 성별 분리는 국가 통치의 핵심 가치였으며,
      여성은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집 안에 머무는 존재’로 규정되었습니다.

      그 결과, 여성 기생의 활동조차 공적 공간에서는 제한되었습니다.

      •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
      • 장군이나 관리들의 병영 접대
      • 궁궐 내부의 특정 의례
        이처럼 여성의 출입이 제한되거나 부적절한 자리에서는
        전통적인 여성 기생을 부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 권위와 문화적 위신을 위한 연회와 공연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이 모순은 결국 대안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 대안으로 등장한 존재가 바로 ‘남성 예인’, 즉 사내기생이었습니다.

      2-2. 예술적 기능의 대체자에서 젠더 수행자로

      사내기생은 처음에는 단지 여성 기생을 대체하는 실용적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그들만의 특유의 예술성과 퍼포먼스, 그리고
      성별 이분법을 교란시키는 존재감이 문화적으로 주목받게 됩니다.

      • 여성의 복장과 화장을 하고
      • 유려한 몸짓과 여성적 음성을 모방하며
      • 때로는 여성 기생보다 더 높은 기술력과 세련된 연희를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사내기생의 존재는 단순한 대체자가 아니라
      젠더 역할을 수행하고 해체하는 복합적인 문화 주체로 자리잡게 됩니다.

      특히 궁중 행사나 양반 가문의 비밀스러운 풍류 자리에서,
      그들은 **‘비일상적 미학’과 ‘경계인의 매혹’**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감각의 충격을 제공했습니다.

      2-3. 권력과 계급의 미묘한 욕망

      사내기생의 등장은 지배계층의 욕망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조선의 상류층, 특히 왕실과 고위 관료층
      단순히 문화적 향유를 넘어
      자신들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 도구로
      이들을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 젊고 예술적으로 훈련된 남성을 곁에 두고
      • 그들의 춤과 노래를 사적으로 감상하거나
      • 일부 경우에는 정서적 혹은 성적 위안의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도 암시됩니다.

      이는 단순한 기예의 문제가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 권력과 예술의 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입니다.

      즉, 사내기생은 단지 ‘재능 있는 예술가’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로서의 존재이기도 했으며,
      당시 권력 구조 속에서 유동적 위치를 차지한 젠더 경계인이었습니다.

      2-4. 민속과 지역 연희 속에서의 전통

      흥미로운 점은,
      사내기생과 유사한 형태의 남성 예인은 궁중뿐 아니라
      지역 민속 연희 속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 무동(舞童): 소년들이 여성 무용수처럼 꾸며 무대에 서는 전통
      • 어릿광대: 복식과 말투를 통해 젠더 코드를 전복하는 연기
      • 남사당패: 남성만으로 구성되었지만 여성 역할을 연기한 민속 예술단체

      이러한 전통은 사내기생이라는 존재가
      조선의 일부 계층만의 특수한 문화가 아니라,
      한국 전통 문화의 저변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 젠더 유연성의 표현임을 보여줍니다.

      2-5. 사내기생의 탄생은 조선의 경직성에 대한 반증이 아니다

      흔히 조선을 ‘보수적이고 성별 이분법이 강한 사회’로 규정하지만,
      사내기생의 등장은 오히려 조선이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비가시적 유연성과 문화적 융통성을 발휘했던 사회
      였음을 말해줍니다.

      • 겉으로는 금욕과 규범을 강조하지만,
      • 실제로는 예술, 감정, 권력의 층위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실천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사내기생은 그 실천의 증거이자,
      조선의 이면에 숨어 있던 다층적인 젠더 문화의 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내기생은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

      사내기생은 예외적 존재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사회가 지닌 복잡성과 모순 속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문화적 산물이었습니다.

      요소                                        내용

       

      시대적 배경 유교적 성 윤리와 예술·연회의 필요 간의 모순
      탄생 동기 여성 기생의 제약, 문화적 대체 수요
      활동 영역 궁중 연회, 지방 병영, 양반 가문 연희
      문화적 의의 성 역할 수행자, 예술적 젠더 경계인
      오늘날 의미 전통 속 성 유연성의 역사적 증거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던 성 역할의 유연성, 사내기생 이야기

      3. 성 역할의 경계를 흐리다: 젠더 수행자로서의 사내기생

      ― 조선시대, 젠더는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이 말은, 사실 비교적 근대적인 가치관입니다.
      조선시대조차 성 역할이 그렇게 단단하고 견고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사내기생’**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이러한 성별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문화적 수행자로서
      당시 사회 안에서 성 역할을 유동적으로 표현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여성 기생을 흉내낸 남성 예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젠더 자체를 예술로 표현하고, 성 역할의 경계를 허무는 무대 위의 젠더 수행자(Gender Performer)**였습니다.

      3-1. 젠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 것’

      오늘날 젠더 이론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개념 중 하나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제시한 “젠더 퍼포먼스(Gender Performance)”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남성성과 여성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반복되는 수행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사내기생은 이 개념을 이해하는 데 매우 흥미로운 역사적 사례입니다.

      •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었지만
      • 여성의 옷을 입고, 여성의 화장을 하고, 여성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여성적 예술을 수행했습니다.
      • 그리고 그 표현은 단지 흉내가 아니라, 연회라는 공식 문화 공간에서 정식으로 수용된 것이었습니다.

      즉, 조선이라는 시대에도 젠더는 표현되고, 연기되고, 구성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사내기생이 보여주는 셈입니다.

      3-2. 사내기생은 어떻게 젠더를 ‘수행’했나?

      그들의 젠더 수행은 단순한 코스튬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의도적이고 반복적인 문화적 ‘행위’**였으며,
      성별의 고정성을 흔드는 하나의 퍼포먼스였습니다.

      복장과 몸짓

      사내기생은 여성 기생과 동일한 한복을 입고, 머리를 틀고, 때로는 장신구를 착용했습니다.
      춤을 출 때도 남성의 직선적 움직임이 아니라,
      부드럽고 곡선적인 여성적 몸짓을 모방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관객에게 **젠더 혼성성(gender fluidity)**을 느끼게 하는 예술적 장치였습니다.

      말투와 언어

      사내기생은 여성처럼 낮고 유연한 말투로, 손님을 응대했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권위적이지 않고, 오히려 감정 표현이 풍부한 정서적 소통의 도구로 기능했습니다.
      이는 당시 여성의 언어가 가지는 문화적 의미를 남성이 '수행'했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입니다.

      노래와 시조

      그들이 부르는 노래나 읊는 시조는 종종 남성의 목소리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서적 결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성별 경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를 부드럽게 교란시키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3-3. ‘경계인’의 매혹과 불편함

      사내기생은 조선의 성 역할 이데올로기 속에서는 명백한 경계의 존재였습니다.
      이들은 때로 예술의 중심에 놓이며 찬사를 받았지만,
      동시에 성적 경계와 윤리의 영역에서는 불안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 이들은 관료 연회, 군영의 접대, 외국 사신 접대 자리에서 ‘공식적 예술가’로 불렸지만,
      • 개인적인 욕망과 연결될 경우에는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사내기생이 단순한 기능적 대체자가 아니라, 성별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반영합니다.

      즉, 조선 사회는 사내기생의 존재를 통해
      자신들이 설정한 성별 규범의 ‘유연성’과 동시에 그 ‘경계의 위기’를 경험했던 셈입니다.

      3-4. 성 역할의 고정성은 문화적 산물일 뿐이다

      사내기생의 존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성별에 따라 고정된 역할이라는 것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와 문화가 정한 규범 속에서 수행되며,
      예술과 의례, 감정의 표현 속에서는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젠더와 성 역할에 대해 가지는 고정관념이
      사실은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
      절대적인 진리나 불변의 규칙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사내기생은 그 역사적 전통의 실증 사례로,
      성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유도하는 존재입니다.

      3-5. 오늘날의 젠더 논쟁 속에서 다시 조명되는 사내기생

      현대 사회는 젠더 이슈로 뜨겁습니다.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퀴어, 성소수자 등
      우리는 더 이상 ‘남성 vs 여성’이라는 이분법만으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 지금,
      사내기생이라는 조선의 경계인은 예외가 아닌 전통의 또 다른 얼굴로서 다시 조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 그들은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를 넘나들었고,
      • 고정된 역할을 수행하기보다, 문화 속에서 유동적인 젠더를 예술로 표현한 존재였습니다.
      • 그들의 존재는 오늘날의 젠더 다양성과 정체성 논의에
        역사적 뿌리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실마리입니다.

      4. 왜 역사에서 사내기생은 말해지지 않았는가?

      ―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사내기생은 조선이라는 질서 속에서 분명 존재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여성 기생의 대체자로, 혹은 독립적인 예술 수행자로, 때로는 왕의 곁이나 병영의 연회장 한복판에 있었죠.
      하지만 이상할 만큼 우리는 이들의 이름을 모르고, 역사책 속에서도 좀처럼 찾을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왜 그들은 그렇게 분명히 ‘존재’했지만, **‘말해지지 않았던 존재’**로 남았을까요?

      4-1. 성리학 이데올로기의 틀: “남자는 밖, 여자는 안”

      조선은 철저하게 성리학을 중심 가치로 삼은 나라였습니다.
      이 사상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철저한 성별 이분법을 요구했습니다.

      • 남자는 공적인 일을 하고, 여자는 가정 안에서 순종해야 하며
      • 성별에 따른 역할 구분은 사회를 유지하는 ‘자연 질서’로 여겨졌습니다.

      이 틀 안에서,
      **여성의 기예는 ‘비교적 허용된 예외’**였지만,
      남성이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도덕적 혼란으로 여겨졌습니다.

      즉, 사내기생은 유교적 가치체계에서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그들의 존재를 정면으로 기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성 윤리의 경계를 흔드는 일이 되었기에,
      공적인 기록에서는 철저히 회피와 침묵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4-2. 공식 기록이 말하지 않는 존재들

      조선은 유독 기록을 중요시한 나라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의궤, 사찬(私撰)문집 등
      철저하게 정리된 역사 문서들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죠.

      하지만 그 기록은 모두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정치적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 기준은 분명했습니다:

      • 국가의 위신에 부합하는가?
      • 유교 질서와 맞는가?
      • 도덕적 교훈을 줄 수 있는가?

      사내기생은 이 세 가지 조건에 모두 어긋났습니다.

      • 국가 위신 측면에서는 ‘기이한 존재’로 비춰질 수 있고
      • 유교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읽힐 수 있으며
      • 도덕적으로는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말해지는 기록’이 아니라, ‘말하지 않음으로써 존재를 제거하는 기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4-3. 구술과 풍속화로만 남은 ‘주변의 흔적들’

      비록 정사에는 남지 않았지만,
      사내기생의 존재는 민속과 예술의 영역에서는 그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구술 전승

      지역 노인들의 구술 자료, 혹은 민속학자들이 채록한 이야기들 속에는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더라”, “예쁘장한 청년이 한복을 입고 노래를 불렀다” 등의 묘사가 종종 등장합니다.
      이들은 명확한 이름이나 신분으로 남지는 않았지만,
      당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다르게 생긴 존재’로 각인되어 있던 이들입니다.

      풍속화

      김홍도, 신윤복 등의 풍속화에는
      성별을 모호하게 그려진 인물들이 간혹 등장합니다.
      긴 소매를 나부끼며 춤을 추는 인물이, 여성으로 보이지만 어딘가 남성적인 실루엣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적 표현은 말 대신 ‘은유와 암시’를 통해 사내기생의 존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4-4. 침묵은 선택이 아니라 제도였다

      중요한 것은,
      이 침묵이 단순히 우연의 산물이나 관심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내기생을 말하지 않는 것 자체가 체제 유지의 전략이었고, 제도였다는 것입니다.

      • 이름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그 존재를 ‘역사 바깥’으로 밀어냄
      • 사관(史官)의 편찬 기준에서 의도적으로 배제
      • 민간의 기록에서조차 ‘비정상’으로 낙인찍거나 희화화

      결국 사내기생은
      살아 있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존재,
      드러났지만, 눈을 돌렸던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4-5. 오늘날 이 침묵을 다시 말한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 왜 우리는 이들을 다시 말해야 할까요?

      첫째, 역사란 기록된 것만이 진실이 아님을 인식하기 위해서입니다.
      침묵 속의 존재들을 다시 호명할 때,
      우리는 그 사회가 숨긴 가치관과 권력의 작동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젠더 다양성과 문화적 포용에 대한 현대적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사내기생은 단지 과거의 예외가 아니라,
      전통 사회 안에도 성 역할이 유연하게 수행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셋째, 말해지지 않았던 이들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역사 복원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을 복원하는 일은, 지금 우리 사회가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5. 오늘날, 사내기생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 과거의 경계인이 던지는 질문, 오늘 우리의 사회를 비추다

      “그들은 단지 지나간 인물일까?”

      사내기생은 오랫동안 잊혀진 이름이었다.
      공식 역사 속에 등장하지 않고, 말해지지 않았으며,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들은 여성도, 남성도 아닌, 혹은 둘 다였던 존재로서
      조선이라는 시대의 성 역할 구조를 교란하면서도 예술을 수행했던 이들이었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지금, 왜 우리는 사내기생을 다시 말하고 있는가?”
      “그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는가?”

      5-1. 사내기생, 젠더 다양성의 문화적 기원

      현대 사회는 성별 이분법의 해체와 다양성의 인정을 향해 가고 있다.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퀴어라는 개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이런 젠더 개념은 서구에서 출발한, 비교적 최근의 이야기”라고 말이다.

      그러나 사내기생이라는 존재는 그 착각에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한국 전통문화의 안에서도,
      **‘남성의 몸으로 여성의 정체성과 표현을 수행했던 예술적 존재’**였으며,
      이는 곧 한국 사회 역시 젠더의 경계를 넘는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었음을 뜻한다.

      즉, 사내기생은

      “한국 전통에도 젠더 유연성은 존재했다”는 역사적 증거이며,
      오늘날의 젠더 다양성 담론이 ‘외래 개념’이 아니라
      **‘문화 속에 내재해 있던 것의 회복’**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5-2.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말해지지 않았던 정체성’

      사내기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통문화의 이미지와 다르다.
      그들은 여성적 감성을 표현하는 남성이었고,
      예술을 수행하며 성적 경계를 넘나들었다.

      이는 곧,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과거가
      ‘누군가를 삭제하거나 침묵시켜 만든 인공적 안정성’ 위에 서 있었음을 말해준다.

      • 남성은 강해야 한다,
      • 여성은 순종적이어야 한다,
      • 전통은 성 역할이 명확했다...

      이런 명제들이 얼마나 많은 ‘예외자’를 지워왔는지를
      사내기생은 몸소 증명하는 존재이다.

      오늘날 이들을 다시 말하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어떤 존재를 지우고, 어떤 존재만을 남겼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
      이다.

      5-3. 문화적 재해석의 가능성

      현대의 젊은 예술가들, 문화 기획자들,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은
      사내기생이라는 존재를 젠더 정체성과 문화 표현 사이의 다리로 다시 조명하고 있다.

      • 퀴어 문화 행사에서 영감을 받은 ‘사내기생 스타일의 복식 공연’
      • 전통국악과 드래그 공연을 결합한 젠더 퍼포먼스 무대
      • 젠더 비순응자를 위한 한국형 문화 아이콘으로서의 재현 프로젝트

      이처럼 사내기생은 과거의 예술적 기예자이자,
      미래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젠더 퍼포머로 새롭게 자리 잡고 있다.

      5-4. 말해지지 않았던 존재를 말한다는 것

      사내기생을 다시 말하는 작업은 단지 문화적 호기심이나 ‘특이한 사례의 발굴’이 아니다.
      그것은 침묵했던 역사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정치적 행위다.

      역사는 늘 승자의 이름만을 기억하고,
      다수의 규범에 부합하는 이들만을 남긴다.
      그 속에서 사내기생과 같은 존재는 ‘주변화’되고 ‘삭제’되기 쉬웠다.

      오늘날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것은,
      지워진 존재를 되살리는 윤리적 선택이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문화적 복원
      이다.

      5-5. 경계에서 존재한 이들이, 오늘의 중심을 흔든다

      사내기생은 경계의 존재였다.
      성별의 경계, 예술과 제도의 경계, 중심과 주변의 경계.

      그들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사회가 설정한 경계는 늘 누군가를 배제한다.”
      “그 배제된 존재들을 다시 초대할 때,
      우리는 더 넓고 깊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사내기생의 이야기는
      단지 한 시대의 문화가 아니라,
      **‘경계에 있었던 모든 존재를 중심으로 불러들이는 일’**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예외’가 아닌 ‘가능성’의 역사

      사내기생은 기록 속에서 사라진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분명히 그 시대를 살았고, 그 시대의 예술과 감정, 경계를 이끌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흔적은,
      조선이라는 강한 질서의 시대 속에서도
      성 역할과 정체성의 다양성이 실존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사내기생의 이야기를 다시 읽고 써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젠더 인식을 더 유연하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역사적 상상력의 복원이기도 합니다.